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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사랑 (계급, 연민, 탐욕)

작은취향 2026. 10. 11. 17:43

목차


    영화가 164분이라는 말에 조금 긴장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시간보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더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장편 <가능한 사랑>은 제8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한국 영화 최초입니다. 그 수식어가 왜 붙었는지, 직접 보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계급은 대사 밖에서 더 잘 보였습니다

    누가 부자고 누가 가난한지 영화가 설명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면서 계속 신경 쓰인 건 그 설명 없이도 자꾸 차이가 보였다는 점입니다. 밥을 먹다가 나오는 말 한마디, 상대방을 바라보는 각도 같은 것들이요.

    영화는 의상을 계급의 언어로 사용합니다. 여기서 '계급의 언어'란 말보다 먼저 상대의 위치를 읽어내는 시각적 신호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옷 하나로 이 사람이 어느 세계에 사는지가 드러난다는 겁니다. 미옥(전도연)이 예지(조여정)의 로로피아나 가방을 휴대폰으로 검색해 가격을 확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순간 미옥의 자리도 동시에 드러납니다.

    인물별 색깔 배치도 정교합니다. 호석(설경구)은 검정, 미옥은 회색, 예지는 흰색, 상호(조인성)는 노란색입니다. 흰색은 노동하지 않는 계급의 증표이고, 노란색은 자본의 색입니다. 흥미로운 건 예지가 세탁소 집 딸이라는 점입니다. 부자들의 비싼 옷을 흠없이 만들어주던 집안에서 자랐는데, 이제는 그 흰옷을 입고 다닙니다. 제가 이 설정을 알고 나서 예지를 다시 봤을 때 느낌이 꽤 달라졌습니다.

    미옥의 어머니도 세차 일을 했습니다. 두 여자가 모두 남의 물건을 닦던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한 명은 그 옷을 입는 세계로 갔고 다른 한 명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이 대칭이 영화 전체에서 제일 서늘하게 느껴진 부분이었습니다.

    • 호석(검정): 해고 노동자, 상복의 색
    • 미옥(회색): 두 세계 사이를 잇는 인물, 노동 계층
    • 예지(흰색): 노동하지 않는 계급, 세탁소 딸이라는 역설
    • 상호(노란색): 자본을 인격화한 유일한 유채색 인물
    요약: 이 영화에서 옷과 색깔은 단순한 미술 선택이 아니라, 인물의 계급적 위치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연민이 사랑처럼 보일 때가 더 문제입니다

    예지가 제일 애매했습니다. 해고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하겠다는 마음을 거짓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데, 결국 타인의 상처를 자기 작품의 재료로 쓰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둘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게 이 캐릭터의 핵심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날카로운 순간은 예지가 미옥의 마스크 공장에 카메라를 들고 갔을 때입니다. 실제 노동 현장은 단조롭습니다. 극적인 사건이 없습니다. 예지가 지루해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가 원했던 것이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과 감정이었다는 게 드러납니다. 철학자 수잔 손택은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고통받는 몸을 담으려는 욕구는 벗은 몸을 담으려는 욕구와 닮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출처: 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예지의 카메라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그겁니다.

    손택은 또 연민(compassion)에 대해서도 경고합니다. 여기서 연민이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생겨나는 감정을 말합니다. 연민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그 고통의 공범이 아닌 안전한 관찰자가 된다는 겁니다. 예지가 말하는 '사랑하려고 노력한다'는 표현이 그래서 더 불편하게 들렸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을 만큼 거리가 멀다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이창동 감독 본인이 예지를 자기 자신과 가장 닮은 인물이라고 밝혔습니다. 소설가 출신으로서 남의 고통을 글로 써온 사람이 그 거리감에 대한 질문을 예지를 통해 스스로에게 던지는 겁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영화 전체의 무게가 달라졌습니다. 노동자의 고통을 재료로 한 영화라는 비판을 감독 스스로가 피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피고석에 세운 셈입니다.

    요약: 예지의 사랑은 시혜적 연민에 가깝고, 영화는 그 불편함을 감독 자신에게도 돌리면서 창작자의 자기 성찰 질문을 던집니다.

     

    탐욕이 멈추는 순간에만 사랑은 가능했습니다

    영화 제목의 '가능한 사랑'은 처음에는 단순한 로맨스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영화가 '내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으로 시작한다는 걸 알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계명은 행동이 아니라 마음을 금지하는 유일한 계명입니다. 이창동 감독은 자본주의 시대에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살 수 있느냐는 질문 때문에 이 계명을 선택했다고 밝혔습니다.

    영화 속 SP 중공업 사태는 가상의 사건이지만, 2009년 실제로 발생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당시 전체 인력의 37%가 해고됐고, 77일간의 파업 이후 강제 진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해고자와 가족 30여 명이 사망했고, 마지막 해고자들이 복직하기까지 11년이 걸렸습니다(출처: 매일노동뉴스). 호석이 자신을 '죽은 자'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불행(malheur)을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사람을 자기 자리에서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살아 있어도 산 사람들 사이에 자리가 없는 상태, 그게 호석입니다. 중간에는 솔직히 이 영화가 조금 길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별장 시퀀스에 이르러 앞에서 별것 아닌 줄 알았던 장면들이 다시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호루라기, 대리석 평상, 달빛 같은 것들이요.

    해변 장면에서 미옥이 옷을 벗는 것은 계급의 언어가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벗은 몸에는 상표도 색깔도 없습니다. 상호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미옥 자신만큼은 가질 수 없다는 걸 그 장면이 보여줍니다. 다 보고 나서 줄거리보다 네 사람이 서로를 정말 이해한 적이 있었는지, 그 생각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탐욕이 없는 인물은 이 영화에 없습니다. 미옥은 예지의 삶을 동경하고, 상호는 미옥을 원하며, 예지는 호석의 고통을 카메라에 담으려 합니다. '가능한 사랑'은 깨끗한 사랑이 아닙니다. 탐욕으로 맺어진 관계 속에서 잠깐 탐욕을 멈추는 그 순간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예지가 카메라를 내려놓고 달려가던 순간, 부부가 나란히 앉아 보름달을 올려다보던 마지막 밤이 그랬습니다.

    요약: 사랑은 탐욕이 완전히 사라진 자리가 아니라, 탐욕이 잠깐 멈춘 그 짧은 틈에서만 가능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가능한 사랑 넷플릭스 언제 공개되나요?

    A. 2024년 9월 23일부터 일부 극장에서 2주 상영 후, 11월 6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됩니다. 러닝타임은 164분이며, 극장 상영 기간이 짧으니 기회가 된다면 극장에서 먼저 보는 걸 권합니다.

     

    Q. 가능한 사랑이 베니스에서 받은 상은 어떤 건가요?

    A. 제8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국제 비평가 연맹상을 수상했습니다. 심사위원 대상은 최고상인 황금사자상 다음 단계의 상으로, 한국 영화가 베니스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Q. 영화 중간에 나오는 쌍용차 사태가 실제 사건인가요?

    A. 영화 속 'SP 중공업'은 가상의 회사입니다만, 2009년 실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에서 영감을 받은 설정입니다. 당시 77일간의 파업과 강제 진압, 이후 이어진 해고자 사망 소식은 영화가 다루는 '죽은 자'의 고통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Q. 영화가 164분인데 지루하지 않나요?

    A. 제가 보면서 중간에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 구간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큰 사건보다 대화와 시선이 중심인 영화라 느린 호흡의 작품을 선호하지 않는 분이라면 힘들 수 있습니다. 다만 별장 시퀀스 이후부터는 앞에서 쌓인 것들이 한꺼번에 터지는 느낌이라, 끝까지 보고 나면 그 긴 시간이 왜 필요했는지 납득이 됩니다.

     

    결론

    잘 만들었다는 생각과 재미있게 봤다는 생각이 꼭 같은 건 아닙니다. 이 영화가 딱 그렇습니다. 노동 문제인지, 계급 이야기인지, 부부 서사인지, 창작자의 자기 성찰인지 어느 하나로 정리가 안 됩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전도연과 설경구의 연기는 크게 울거나 소리치는 장면보다 가만히 있다가 표정이 조금 바뀌는 순간이 더 신경 쓰였습니다. 올해 본 영화 중 이만큼 오래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 없었습니다. 넷플릭스 공개 전에 극장에서 볼 수 있다면 그쪽을 권합니다. 164분이 어떤 무게인지 스크린에서 먼저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참고: https://youtu.be/kU6iq-_iaPE?si=E0z58xHxmRhknP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