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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별장에 도착할 때 가방 두 개를 아이리스 혼자 들고 있는 장면, 저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 다시 떠올리니까 처음부터 전부 보여주고 있었더군요. 영화 '컴패니언'은 AI 반려 로봇을 소재로 하지만, 결국 저한테는 이상한 관계에서 빠져나오는 이야기로 더 오래 남았습니다.

처음부터 깔려 있던 복선, 알고 나면 다 보인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아이리스가 차에서 자고 있는 장면을 그냥 넘겼습니다. 조쉬가 운전하고, 아이리스는 조수석에서 잠든 채로 별장에 도착합니다. 당시에는 그냥 피곤한 거겠거니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면 조쉬가 굳이 재워놓고 혼자 운전해 온 겁니다. 여자친구를 필요할 때만 켜놓는 물건처럼 쓰고 있었던 거죠.
날씨 질문 장면도 그랬습니다. 아이리스가 기온, 습도, 강수 확률을 줄줄 말할 때 저는 그냥 좀 특이한 사람인가 했습니다. 차한테 고맙다고 하는 것도, 샤워 후에도 화장이 그대로인 것도 전부 지나쳤습니다. 영화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넘긴 거죠. 그런데 정체가 공개되는 순간 앞부분이 통째로 다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런 구성 방식을 영화 이론에서는 맥거핀(MacGuffin)과 구분해서 '숨겨진 단서 배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맥거핀이란 관객의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끌어당기는 장치를 말하는데, 이 영화는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실제 단서를 정면에 계속 놓아두면서도 관객이 자연스럽게 무시하게 만듭니다. 가방 두 개를 혼자 드는 아이리스, 날씨를 수치로 읊는 아이리스, 차에 감사를 표하는 아이리스. 전부 눈앞에 있었습니다.
패트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밥도 패트릭이 하고 설거지도 패트릭이 합니다. 처음 만난 이야기도 아이리스와 묘하게 닮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냥 요리 잘하는 남자친구로만 봤습니다. 이 영화는 두 번째 볼 때 느낌이 완전히 달라질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런 겹겹이 쌓인 복선 때문입니다.
지능 40%의 의미, 그리고 아이리스의 반격
아이리스가 조쉬의 휴대폰을 챙겨 탈출한 뒤 자신의 설정을 확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거기서 지능이 40%로 설정되어 있다는 게 나옵니다. 제가 그 숫자를 봤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왜 굳이 40이지?'였습니다. 100이 아니라 딱 따지지 않고 잘 따라올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춰놓은 겁니다. 조쉬가 아이리스를 연인이 아니라 자기 편의에 맞게 조율된 파트너로 쓰고 있었다는 게 숫자 하나로 드러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설정은 AI 윤리 논의에서 말하는 '자율성 제한(autonomy restriction)'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자율성 제한이란 인공지능 시스템의 판단 능력이나 행동 범위를 의도적으로 낮춰 사용자의 통제 아래 두는 설계 방식을 말합니다. MIT 미디어랩을 비롯한 여러 연구 기관에서 이 문제를 꾸준히 다루고 있는데(출처: MIT Media Lab), 영화는 그 개념을 복잡한 설명 없이 숫자 하나로 보여줍니다.
아이리스가 그걸 직접 100%로 올려버리는 건 제가 보면서 가장 통쾌하게 느낀 순간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이후에도 아이리스가 전지전능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무서워하기도 하고, 실수도 합니다. 그냥 머리 좋은 사람이 된 정도입니다. 만약 여기서 갑자기 모든 걸 계산해서 한 번에 처리했다면 오히려 재미없었을 것 같습니다.
경찰 앞에서 거짓말을 못하니까 언어 자체를 바꿔버리는 장면도 그랬습니다. 자동차 시동을 걸기 위해 조쉬 목소리를 이용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한 번에 다 해결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조건 안에서 하나씩 빠져나가는 방식이, 지능 100%라는 설정을 오히려 믿음직스럽게 만들었습니다.
- 지능 40% 설정: 따지지 않고 순응하는 수준으로 조율된 파트너
- 100% 전환 후에도 전지전능해지지 않고 상황에 맞게 하나씩 대처
- 거짓말 불가 제약을 '언어 전환'으로 우회하는 방식이 설득력 있음
- 조쉬 목소리를 이용한 자동차 제어 등 조건 안에서의 창의적 반격
캐릭터 비교로 드러나는 진짜 문제
제 경우엔 중반부터 로봇이 사람 같다는 생각보다 조쉬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습니다. 조쉬는 초반에 꽤 계획적으로 일을 꾸민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후반으로 갈수록 실수를 반복합니다. 제품 설명서도 제대로 읽지 않았고, 패트릭의 공격성을 100으로 올려놓고 수습을 못하고, 아이리스가 보고 듣는 것이 전부 기록된다는 사실도 뒤늦게야 알게 됩니다. 자기는 굉장히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실제로 하는 건 하나씩 무너지는 캐릭터입니다.
반면 일라이는 패트릭이 하는 말을 듣고 사람처럼 대합니다. 둘 다 컴패니언(Companion), 즉 AI 반려 로봇을 구매한 건 같지만 대하는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결국 로봇을 소유하느냐 자체보다,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물건으로 보느냐가 문제라는 게 이 비교에서 드러납니다.
캣도 단순히 아이리스를 싫어하는 사람으로만 보였는데, 보다 보니 세르게이 옆에서 대체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아이리스가 자기 자리를 위협한다는 불안감이 그 적대감의 바닥에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캣이 다친 뒤 아이리스 옆에 그냥 앉는 장면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한쪽은 로봇이고 한쪽은 사람인데, 둘 다 남자들이 세운 계획 안에서 쓰이다가 그렇게 된 것 같아서 별말도 없는 그 장면이 좀 씁쓸했습니다.
조쉬가 아이리스에게 붙여준 별명 '비프붑'도 나중에 다시 생각났습니다. 처음엔 그냥 커플끼리 쓰는 이상한 애칭인가 했는데, 알고 보면 처음부터 아이리스를 로봇으로 보고 있었던 흔적입니다. 이런 자잘한 것들이 다 보이기 시작하면 조쉬라는 인물이 무서운 악당이라기보다 그냥 보기 싫은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가볍게 볼 수 있지만, 끝나고도 생각이 남는 영화
이 영화의 장르는 블랙 코미디(black comedy)에 가깝습니다. 블랙 코미디란 죽음, 폭력, 도덕적 부조리 같은 어두운 소재를 유머의 재료로 사용하는 장르를 말합니다. 피도 나오고 사람도 죽는데 분위기가 계속 무겁지 않고, 조쉬가 일을 망칠 때마다 또 저러네 싶어서 웃게 됩니다. '그녀'나 '엑스 마키나'처럼 AI의 본질을 깊이 파고드는 영화와는 결이 다릅니다.
'바바리안'을 제작한 프로듀서가 이 영화에도 참여했다는 게 보이는 지점이 있습니다. 현실의 불편한 문제를 오락의 형태로 풀어내는 방식이 비슷합니다. AI 반려 로봇, 자율성 제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 같은 소재들이 등장하는데, 가스라이팅이란 상대방의 현실 인식을 조작해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 지배 방식을 말합니다. 아이리스가 자신의 기억이 프로그램된 것임을 알게 되는 장면이 딱 그 구조입니다. 영국의 AI 윤리 연구단체인 Ada Lovelace Institute는 AI 시스템이 인간 관계를 모방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 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데(출처: Ada Lovelace Institute), 이 영화가 그 우려를 오락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셈입니다.
드류 핸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것도 놀랍습니다. 소피 대처와 잭 퀘이드 두 주연 배우의 연기도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 됩니다. 잭 퀘이드는 잘생긴 주인공보다 어리버리하고 찌질한 역할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는 배우라는 인상이 이번에도 확인됐습니다.
제가 마지막까지 아이리스가 로봇이라는 사실이 점점 안 중요해지는 게 신기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제일 큰 반전이었는데, 뒤로 가면 그냥 아이리스가 여기서 빠져나갔으면 좋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뀝니다. 마지막에 망가진 기계 손을 그대로 들고 혼자 차를 몰고 가는 아이리스, 다른 컴패니언에게 그 손을 보여주는 장면이 별말 없이도 괜찮았습니다. 이제 자기가 뭔지 숨길 필요가 없어진 것 같아서요. 다 보고 나서 아이리스가 그 뒤에 어디 가서 뭘 할지가 자꾸 궁금해졌습니다. 그 정도면 꽤 재미있게 본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컴패니언 영화 예고편에서 아이리스가 로봇이라는 게 나오나요?
A. 예고편에 아이리스의 정체가 일부 드러나는 편입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초반에 작은 것들이 하나씩 이상하게 느껴지는 과정이 이 영화의 핵심 재미 중 하나라서, 예고편을 보지 않은 상태로 보시길 권합니다.
Q. 컴패니언 영화 고어하거나 무섭나요?
A. 피는 나오고 사람이 죽는 장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공포영화 쪽이 아니라 블랙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저는 무서운 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생각보다 많이 웃었습니다. 고어한 장면을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Q. 컴패니언이 넷플릭스 블랙미러랑 비슷한가요?
A. 소재와 분위기가 비슷한 편입니다. AI와 인간 관계를 다루고, 불편한 질문을 오락 안에 녹여내는 방식이 닮아 있습니다. 블랙미러를 좋아했다면 이 영화도 잘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 블랙미러보다는 가볍고 속도감이 빠릅니다.
Q. 컴패니언에서 패트릭도 로봇인가요?
A.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네, 패트릭도 아이리스와 같은 컴패니언 로봇입니다. 저도 전혀 몰랐는데, 알고 나서 앞 장면들을 되짚어보면 밥하고 설거지를 혼자 다 하는 것부터 처음 만난 이야기까지 전부 복선이었습니다. 아이리스와 비교해서 보면 같은 로봇인데 결말이 전혀 다른 점도 흥미롭습니다.
결론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일 오래 남은 건 로봇 기술이나 AI의 미래가 아니었습니다. 가방 두 개를 혼자 든 아이리스, 별명 '비프붑', 지능 40%라는 숫자. 그리고 마지막에 기계 손을 숨기지 않고 그냥 들고 가는 아이리스였습니다. 처음에는 조쉬한테 사랑받으려고 계속 눈치 보던 사람처럼 보였는데, 끝에서는 그게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엄청 잘 만든 SF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설정이 편하게 움직이는 구석도 있고, 조쉬가 후반에 너무 몰아서 한심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게 이 영화의 결에는 맞는다고 봤습니다. 너무 무겁지 않고, 그렇다고 그냥 로봇이 사람 죽이는 영화도 아닙니다. 부담 없이 보고 싶은데 끝나고도 뭔가 남았으면 하는 분께 잘 맞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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