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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좀비 영화를 보러 갔다가 정작 머릿속에 남은 건 감염자가 아니라 멀쩡한 인간이었으니까요. 영화가 끝나고 제일 먼저 떠오른 이름이 지미 크리스탈이었을 때, 이 영화가 뭔가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랄프 파인즈가 연기한 켈슨과 삼손의 이야기는 그 안에서 또 전혀 다른 층위를 만들어 냈고요.

지미 크리스탈, 좀비보다 더 무서운 이유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감염자가 뛰어오는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지미 크리스탈과 그 무리가 누군가를 잡아놓고 웃고 떠드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미쳐 날뛰는 게 아니었습니다. 말을 많이 했고, 자기 나름의 믿음이 있었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방식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싫었습니다. 그냥 미친 사람 한 명이면 피하면 될 것 같은데, 주변이 전부 그 사람 말을 듣고 있으니까요.
지미 크리스탈이라는 캐릭터는 영국의 실존 방송인 지미 새빌(Jimmy Savile)을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미 새빌은 수십 년간 대중적 인기와 자선 활동 뒤에 대규모 아동 성폭행을 저질렀던 인물입니다. 영화 속 지미가 "자선(charity)"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면서 사람들을 착취하는 장면은 이 실존 인물에 대한 직접적인 비유로 읽혔습니다. 그 위선의 구조가 스크린 안에서 이렇게 선명하게 보인 건 처음이었습니다.
여기에 사이비 교주 찰스 맨슨(Charles Manson)의 요소도 덧씌워져 있습니다. 찰스 맨슨은 1960년대 말 맨슨 패밀리라는 집단을 이끌며 연쇄 살인을 지시한 인물로, 카리스마로 추종자를 모아 폭력을 정당화했습니다. 지미의 집단 형성 방식, 표식, 이름까지 이 둘을 합쳐놓은 것 같은 형태입니다. 영화가 지미를 단순한 악당으로 두지 않고 이렇게 실존 인물과 겹쳐 놓은 건, 이런 구조가 현실에도 반복됐다는 말을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스파이크가 저 무리 안에 섞여 있는 걸 보는 내내 얘가 언제 잘못 걸릴까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영화는 또 파시즘(fascism), 포퓰리즘(populism), 민족주의 같은 개념을 직접 언급하기도 합니다. 파시즘이란 강력한 국가 권력과 집단적 복종을 앞세워 개인을 억압하는 정치 체제를 말하고, 포퓰리즘이란 대중의 감정에 호소해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영화 속 지미의 집단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구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고문 장면은 솔직히 좀 과했습니다. 잔인해서 못 보겠다기보다 이 정도까지 보여줘야 했나 싶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지미 대사가 너무 길어서 어느 순간에는 알겠으니까 이제 다음으로 가자 싶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이 불편함 자체가 영화가 의도한 감정이라는 건 인정합니다.
- 지미 크리스탈의 모티브: 지미 새빌(대중적 위선) + 찰스 맨슨(집단 통제)
- 감염자보다 사람이 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구조
- 파시즘·포퓰리즘 비판을 캐릭터 하나에 압축
- 고어와 지미 대사 분량은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
켈슨과 삼손, 분노 바이러스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이야기
저는 오히려 켈슨과 삼손 쪽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처음에 삼손을 봤을 때는 이번 편에 나온 강한 감염자 하나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켈슨은 그를 죽이려고만 하지 않았습니다. 모르핀을 투여하면서 상태를 지켜보고, 이 사람한테 아직 뭔가 남아 있는 건 아닌지 계속 확인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아니 저걸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습니다.
켈슨이 세운 가설은 이렇습니다. 분노 바이러스(Rage virus)는 뇌를 망가뜨리는 파괴적 질병이 아니라, 지각의 왜곡을 유발하는 정신 질환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분노 바이러스란 영화 시리즈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가상의 감염원으로, 숙주를 극단적인 공격성으로 몰아붙이는 바이러스입니다. 쉽게 말해 감염자가 분노만 남은 상태로 변한다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켈슨은 이 분노 자체가 모르핀 같은 약물로 가라앉힐 수 있는 증상일 수 있다고 봤습니다. 편집증적 적대감을 걷어내면 그 안에 아직 사람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이었습니다.
삼손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보면서 저도 어느 순간 얘를 그냥 감염자 하나로 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무서워야 하는데 오히려 불쌍하게 보이는 순간이 생겼습니다. 좀비 영화를 보면서 감염자한테 이런 감정이 드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둘이 같이 있는 장면에서 음악이 나오고 삼손이 움직이는 걸 보고 있을 때, 제가 지금 좀비 영화를 보는 게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또 이상하게 싫지 않았습니다.
켈슨과 삼손의 이야기는 성경의 삼손과 로마 신화 속 안드로클레스(Androcles)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안드로클레스란 발에 박힌 가시를 뽑아줘서 사자와 교감한 노예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켈슨이 삼손의 고통을 걷어내고 그 안의 인간성을 끌어내는 구조가 이 신화와 겹칩니다. 이 설정이 단순한 감동 코드가 아니라 시리즈 전체의 전제를 흔드는 지점이라 더 신경 쓰였습니다. 28년 동안 죽여야 할 괴물로만 봐왔던 존재가 치료될 수도 있다면, 그동안의 모든 전제가 흔들리니까요.
랄프 파인즈는 이 영화에서 빼기가 어렵습니다. 웃기게 행동하다가 갑자기 진지해지고, 이상한 사람 같다가도 이 영화에서 제일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인물이 됩니다. Iron Maiden이 켈슨 장면 전체를 덮어버릴 때는 좀비 영화가 맞나 싶으면서도 기억에 박혀버렸습니다. 영화 보고 나서 감염자한테 쫓기는 장면이 아니라 켈슨이 음악 틀어놓고 있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는 게 제 솔직한 반응입니다.
한 가지 걸렸던 건 이 설정이 조금 쉽게 나온다는 느낌이었습니다. 28년 동안 아무도 못한 걸 켈슨 혼자 저 환경에서 알아낸다는 게 납득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완전한 치료제를 만들어 세상을 구했다는 것도 아니고, 삼손 하나를 통해 가능성만 열어둔 방식은 다행이었습니다. 이게 진짜 치료인지 잠깐 눌린 건지, 그 답은 다음 편에서 보고 싶어졌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28년 후는 전편 28일 후를 보고 가야 하나요?
A. 전편을 보고 가면 짐이라는 캐릭터의 무게감이 달라집니다. 오프닝부터 짐의 목소리로 시작하면서 전편의 상황을 상기시키는 구조라서, 28일 후의 맥락을 알고 있으면 장면 하나하나가 더 입체적으로 읽힙니다. 모르고 봐도 이야기 자체는 따라갈 수 있지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꽤 클 것 같습니다.
Q. 28년 후에서 좀비 액션은 많이 나오나요?
A. 기대했던 것보다 적습니다. 감염자보다 지미 크리스탈 집단과 켈슨·삼손 이야기에 더 많은 시간을 씁니다. 실제로 좀비가 너무 적어서 아쉬웠다는 반응과, 오히려 그래서 새로웠다는 반응이 명확하게 갈립니다. 저는 감염자 액션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보는 쪽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Q. 분노 바이러스가 치료될 수 있다는 설정, 전편과 충돌하지 않나요?
A. 이 지점이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이전 작품들에서 분노 바이러스는 치료 불가능한 것으로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완전한 치료제를 제시하지 않고 삼손 하나를 통해 가능성만 열어둡니다. 이 가능성이 진짜 치료인지, 약물로 일시적으로 억누른 것인지는 아직 열려 있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시리즈 설정을 완전히 뒤집기보다는 다음 편을 위한 문을 열어둔 것에 가깝습니다.
Q. 지미 크리스탈의 실제 모티브가 따로 있나요?
A. 두 명입니다. 영국의 방송인 지미 새빌과 사이비 교주 찰스 맨슨을 합쳐놓은 캐릭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미 새빌은 생전에 자선 활동으로 유명했지만 사후에 수백 건의 아동 성폭행이 밝혀진 인물입니다. 영화 속 지미가 "자선"을 입에 달고 다니며 사람을 착취하는 구조는 이 실존 인물에 대한 직접적인 은유입니다. 이 배경을 알고 보면 지미라는 캐릭터가 훨씬 불쾌하게 읽힙니다.
Q. 랄프 파인즈가 정말 영화를 끌고 가나요?
A. 과한 말 같다가도 다 보고 나면 맞는 것 같은 평가입니다. 켈슨이라는 캐릭터는 웃기다가 진지해지고, 이상하다가 제일 정상적인 말을 합니다. 제가 보면서 느낀 건 오랫동안 혼자 저 세상에서 버텨온 사람이라면 저렇게 될 것도 같다는 납득이었습니다. 영화 보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켈슨과 관련된 것들이라는 게 그냥 나온 평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결론
다 보고 나니까 처음 생각했던 영화하고 꽤 달랐습니다. 감염자들이 몰려오는 장면보다 이상한 의사, 사람으로 돌아오는 것 같은 감염자, 악마를 믿는 집단 이야기를 더 오래 봤습니다. 그래서 전형적인 좀비 영화라고 하면 좀 애매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래서 전편보다 이번 편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좋은 부분과 싫은 부분이 완전히 따로 있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지미 쪽은 길고 잔인한 장면이 과하다 싶었고, 켈슨과 삼손 쪽으로 넘어가면 또 계속 보게 됐습니다. 감염자가 치료될 가능성이 열렸고 멀쩡한 인간이 더 답 없는 상황이 됐을 때, 이 시리즈가 다음 편에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다시 보고 싶은 건 아닌데, 다음 편은 기다려집니다.
참고로 영화의 주제 의식인 파시즘 비판과 역사 반복 경고는 킬리언 머피의 대사를 통해 직접 언급되기도 합니다. 이 부분의 맥락을 더 깊이 보고 싶다면 아래 영상이 도움이 됩니다(출처: 유튜브 영상 해설). 영화 속 지미 새빌 모티브와 찰스 맨슨의 실제 행적에 대해서는 BBC 아카이브에서도 관련 기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BBC News — Jimmy Savile 관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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