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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등장인물, 종교적 광기, 톰 홀랜드)

작은취향 2026. 9. 19. 15:45

목차


    출연진 이름만 봐도 쉽게 볼 수 없는 영화가 있습니다. 톰 홀랜드, 세바스찬 스탠, 로버트 패틴슨, 엘리자 스캔런. 캐스팅 목록을 보고 저도 처음엔 꽤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였습니다. 좋은 일이 단 하나도 없는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중간에 끄지를 못했습니다.

    등장인물이 많아서 헷갈렸지만, 다 이어지는 구조였다

    솔직히 처음 30분은 꽤 혼란스러웠습니다. 윌러드가 나오다가 갑자기 로이와 헬렌이 나오고, 또 칼 부부가 나오고, 시간도 계속 앞뒤로 오갑니다. 이 영화가 채택한 방식은 이른바 앙상블 내러티브(Ensemble Narrative)라고 불리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앙상블 내러티브란 각기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진행하다가 점차 하나의 사건이나 주제로 수렴시키는 서사 방식을 말합니다. 코언 형제 감독의 작품이나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방식이기도 합니다(출처: IMDb, The Devil All the Time).

    처음에는 이름까지 외워가며 봐야 하나 싶었습니다. 윌러드, 아비, 리노라, 로이, 헬렌, 칼 부부, 보안관 보데. 등장인물이 많아도 너무 많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군상극은 뒤로 갈수록 연결의 쾌감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습니다. 연결되는 건 맞습니다. 근데 그 과정이 전혀 유쾌하지 않아서, 연결되는 순간에 '아 그래서였구나'라는 감탄보다 '이것도 이렇게 끝나는구나'라는 체념이 먼저 왔습니다.

    중반부가 약간 늘어진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보안관 보데 이야기가 길어지는 구간에서 살짝 집중이 흐트러졌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에 대해 찾아보니 초반 이야기가 따로 노는 것 같다는 반응이 꽤 있었는데, 저도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보게 된 건, 아비가 마지막에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시간대가 여러 개로 분리되어 진행되므로 초반에는 인물 관계 파악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 앙상블 내러티브 특성상 중반까지는 각 이야기가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 후반부에서 인물들이 하나씩 연결되는 방식은, 쾌감보다 체념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옵니다
    요약: 등장인물이 많아 초반은 혼란스럽지만, 앙상블 내러티브 구조 덕분에 후반부에는 모든 인물이 아비를 중심으로 수렴됩니다.

     

    종교적 광기가 이 영화를 단순 스릴러와 다르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했던 건 폭력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윌러드가 아내 샬롯의 병을 낫게 해달라며 강아지를 제물로 바치는 장면이었습니다. 처음엔 아내가 아프니까 저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강아지까지 희생시키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윌러드의 표정이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자기 혼자 믿고 혼자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이 진짜 소름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은 맹목적 신앙주의(Fideism)입니다. 여기서 피데이즘이란 이성적 판단이나 증거보다 믿음 자체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윌러드도, 로이도, 목사 티가딘도 모두 이 패턴 안에 있습니다. 믿음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그 믿음이 자기 욕망이나 두려움을 포장하는 수단이 되는 순간 영화가 보여주는 공포가 시작됩니다(출처: Rotten Tomatoes, The Devil All the Time).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목사 티가딘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싫었던 인물입니다. 살인을 저지르는 칼 부부보다 목사가 더 화가 났습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겉으로 선한 척하면서 뒤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게 더 역겹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로버트 패틴슨인 걸 알면서 봤는데도 한동안 배우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저 목사 왜 저러나, 그것만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리노라 캐릭터는 처음부터 불안했습니다. 너무 믿고 너무 착해서 오히려 뭔가 일이 생기겠다 싶었습니다. 이중 행동(Double-Bind)이라는 심리학 개념이 있는데,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해도 결국 피해를 입게 되는 구조적 상황을 말합니다. 리노라는 신앙을 지켜도, 목사를 믿어도 결국 어느 쪽이든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영화가 의도적으로 이 캐릭터를 가장 아프게 설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약: 이 영화의 진짜 공포는 폭력이 아니라, 믿음을 자기 욕망의 포장지로 쓰는 인물들의 맹목적 신앙주의에서 나옵니다.

     

    톰 홀랜드는 예상보다 훨씬 잘 어울렸다, 그리고 아비라는 인물에 대한 생각

    솔직히 제가 직접 보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스파이더맨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톰 홀랜드가 이런 묵직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프랜차이즈 히어로 영화에 익숙한 배우는 장르 전환이 어색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 편견이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스파이더맨이 머릿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아비는 말수가 적고 계속 참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가 리노라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행동으로 나서는 장면은 아버지 윌러드에게서 뭔가 배운 게 있구나 싶었습니다. 좋은 걸 배운 건 아닌데, 가만히 당하고 있는 것보다 속은 시원했고, 그러면서도 이게 맞나 싶었습니다. 그 장면이 가장 솔직하게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를 담고 있었습니다.

    아비의 복수 여정에서 나오는 도덕적 모호성(Moral Ambiguity)이라는 개념도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도덕적 모호성이란 어떤 행동이나 인물이 명확하게 선하거나 악하다고 규정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아비는 여러 명을 죽였지만, 먼저 건드린 건 다 상대방이었고, 아비는 계속 자기 사람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다 보고 나서도 아비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냥 저렇게 살 수밖에 없게 된 사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비가 차를 타고 다시 어딘가로 떠납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이제 좀 평범하게 살았으면 싶었습니다. 근데 이 영화라 그런지, 그것도 잘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제목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가 왜 그 제목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누구 한 명이 사라지면 끝날 것 같은데, 계속 다른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악마가 사람 이름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가리키는 것 같았습니다.

    요약: 톰 홀랜드의 연기는 예상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었고, 아비라는 인물은 끝까지 선악의 경계가 흐릿한 도덕적 모호성을 유지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원작 소설이 있나요?

    A. 네, 도널드 레이 폴록(Donald Ray Pollock)이 2011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원작자 자신이 영화에서 내레이터로 직접 목소리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소설과 영화 모두 오하이오 주 남부 지역의 어두운 분위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저는 영화만 봤는데도 분위기가 충분히 전달됐다고 느꼈습니다.

     

    Q. 영화가 너무 어둡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우울한가요?

    A. 솔직히 말씀드리면 맞습니다. 좋은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끝나면 다른 사람에게 또 생기는 방식이라 중간에 한숨이 나오는 구간이 꽤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스릴러는 긴장과 이완을 반복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영화는 이완 구간이 거의 없다는 게 제 경험상의 차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끄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Q. 톰 홀랜드가 주연인데 스파이더맨 이미지가 방해되지 않나요?

    A. 처음에는 그 걱정을 저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봤더니 생각보다 금방 잊혔습니다. 아비 캐릭터가 말이 없고 감정을 억제하는 인물이라서 그런지, 톰 홀랜드 특유의 밝은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덮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오히려 로버트 패틴슨이 목사로 나오는 장면에서 더 집중하게 됐습니다.

     

    Q. 영화 중간에 시간대가 헷갈리는데, 어떻게 보는 게 좋을까요?

    A. 초반 인물 관계를 억지로 외우려 하기보다 분위기로 따라가는 것이 저한테는 더 맞았습니다. 이 영화는 앙상블 내러티브 구조상 중반까지는 이야기가 따로 노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정상입니다. 후반부에 가면 자연스럽게 연결되니 초반에 너무 힘 빼지 않아도 됩니다.

     

    결론

    재밌었냐고 묻는다면 재밌었다고 답하겠습니다. 그런데 남한테 막 보라고 하기는 좀 애매한 영화입니다. 호화로운 출연진에 걸맞는 화려한 작품은 아닙니다. 대신 공들여 만든, 녹진하고 깊이 있는 스릴러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있는데, 아비의 행동이 정확히 그 아이러니를 담고 있었습니다.

    다 보고 나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장면은 꽤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힘인 것 같습니다. 어둡고 피곤한 영화를 한 편 버텨낼 여유가 있을 때 보시는 걸 권합니다. 밝은 기분으로 틀었다가는 중간에 후회할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rd5pF9Qj_C8?si=E5y5pUvCP9SbB0xI